반교: 디텐션 (Detention, 2019)
반교[ 頒敎 ]
국가의 비상사태나 중요 사안이 있을 때나 나라의 경사나 왕실의 경사가 있을 시 백성에게 포고하는 국왕의 포고문이 사전적인 의미의 반교이다.
[네이버 지식배과]
처음엔 망설였다.
영화 제목이 너무나 생소하면서도 촌스럽다고 할까?
대부분의 공포영화는 일단 보고 판단한다.
평점이 적어도 4점만 넘으면 후기가 별로라 해도 뭐 다 각자의 취향이란 게 있는 거니깐이라며 스토리를 먼저 훑어본다.
그리곤 내가 관심이 있는 내용이면 보고 판단한다.
하지만 이 영화 포스터를 보고 내내 망설였던건 아직 대만영화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었고,
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제목이 좀 걸렸으며, 왠지 뻔할 것 같은 학교물이라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다.
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고 볼까 말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가장 최근에 본
배드 지니어스 Chalard Games Goeng , Bad Genius , 2017
라는 태국영화가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었다.
너무 상업적이거나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요소들이 가득한 할리우드 영화와 더 이상 공포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나 ocn이나 tvn 드라마가 훨씬 더 퀄리티 있고 스토리 쫀쫀하고 캐릭터 살아있게 잘 만들지 않나 하고 회의적인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 아시아권 영화.
그래서 혹시 이 영화 그렇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났다.
그리고 일단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아서 뭐 실망도 없지 하는 맘도 한편에 있어나 보다.
게임이라고 테트리스 정도 아는 내가 이 영화가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도 살짝 보긴 했지만 뭐 그래서 어떻다고 난
게임 안 좋아하는데 라고 심드렁하게 생각하면서 킬링도 괜찮다는 맘으로 가볍게 보기 시작했다.
일단 볼 맘을 먹은 단계에선 줄거리는 더 이상 읽지 않는다는 내가 영화를 보는 원칙이다.
스포를 보면 영화를 완벽하게 즐기는데 방해가 되는깐. 김 빠진 맥주처럼 말이다.
말이 길어졌지만 이렇게 길게 변명을 시작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이다.
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상외로 너무나 재미있었다.
영화를 보는 내내 스쳐가는 생각들과 예전에 보았거나 읽었던 책들이 떠올랐다.
이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생각난 한국영화는
여고괴담 女高怪談 , Whispering Corridors , 1998
최강희를 닮은 듯한 첫사랑을 연상케 하는 단발머리 교복 입은 소녀.
하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정했다고 해서 비슷한 영화겠지 하고 생각한 건 나의 실수였다.
대만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좀 충격이었다.
그것도 아주 옛날의 일이 아닌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.
아픈 시대상을 담고 있는 내용을 공포라는 장르와 결합해서 만들었다는데 너무 놀랐다.
사실 이런 역사적인 아픈 진실을 담고 있는 영화들은 판타지 공포영화로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 듯하다.
간혹 비슷한 류가 있다고 해도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개인이나 가족 구성원 등 작은 집단들이 느꼈을 공포를 표현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렇게 전 국민이 느꼈을 아픔을 판타지와 공포를 결합시켜서 그려내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.
[판의 미로]라든지 [체르노빌] 미드 등도 그 시대상을 담고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려내진 않는 듯하다.
아님 [체르노빌]처럼 웃음끼 쫙 뺀 리얼리티를 강조해서 보여주던지..
줄거리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고,
이 영화를 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생각나서 적어본다.
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집중 [거울]
하지만 거울은 없었어. 그런 건 애당초 없었던 거야. 현관의 신발장 옆에 거울이 달려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. 그랬단 말일세. 이런 경위로 해서, 나는 유령 같은 건 보지 못했어. 내가 본 것은 그저 그런 나 자신이야. 하지만 나는 그날 밤에 맛본 공포만은 여태껏 잊을 수가 없어. 그리고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지. 인간에게 있어서 , 자기 자신만큼이나 겁나는 것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고 말이지.-하루키 단편집 [거울]에 수록된 내용
영화 속의 소녀는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 보기가 두려웠던 것 같다.
언제나 가장 공포스러운 건 하루키가 말했듯이 귀신 이런 것들이 아니라 남들은 모르지만 나 자신은 알고 있는 나와 정확히 대면하는 순간인 것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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